[!] 드디어 밝혀보는.. 이스2스페셜 X-File
꽤 예전에, 세종대학교 게임스쿨에 그래픽 강의를 꽤 나간 적이 있었다.
자기경력을 어느정도 소개하고 강의를 하던 도중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는데 강의실 밖 복도에서
담배를 한대 물고 불을 붙이려니(당시 헤비스모커였음..) 어느 학생이 내 곁으로 다가와서는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그 이스2 스페셜에서요..살몬의 신전은 도저히 통과를 못하겠던데 어떻게 해야
나올 수 있는 거였나요?"

이때,
나는 담배를 떨구었고 쥐구멍을 찾았다. (...)


▲당시 각종 게임잡지에 발매전 실린 광고. 물론 게임이 2월 15일 나오진 않았음..

이스2 스페셜. 지금도 숱한 게이머들의 단골 입담 재료로서 오르내리고 있는 그 희대의 풍운작.
(필자는 그렇게 평하고싶다.물론 뻔뻔한 평가다) 대한민국 게임개발의 분수령이라 일컬어지는
동시에 게임개발 기술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는 평가와 최악의 버그,끝없는 노가다,
기준없는 편작,의미없이 이리저리 꼬아버린 내용 등등..이라는 졸작에 붙일만한 이름이란 이름은
다 붙일 수 있는 악평이 따라다니는... 대한민국 게임사에 애증으로 지금까지 구전되어 오고있는 
이스 2 스페셜.

필자는... 불과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이 게임은 완전히 세상에 묻혀버린 물건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프닝 동영상. 출처는
우노의 블로그
(참고로 우노님은 2006년 4월 13일 사망하셨습니다.뒤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데, UCC붐을 타면서 이 물건에 대한 포스팅이 솔솔 올라왔고 게다가  이 게임의 오프닝영상까지
인터넷을 떠돌게 됨에 따라 아직까지도 이 게임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속속 나타나게 되었고
그 때의 추억(?)을 잊지 못하신 어느 분께선 아예 도스부팅까지 시전하는 포스팅을 올려주시기도 하였다.
그것들을 둘러보니, 정작 개발자였던 내가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당시 이 게임에 얼마나 많은 유저분들이
격분했고 (...)그와 동시에 깊은 애환(??)으로 남아 계신지 그 깊이를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포스팅들 중에 당시 떠돌았던 여러 유언비어,의혹,진실들이 다시 무덤에서
기어나와 스릴러를 추고 있기에 이제 정리를 좀 해야 할 때가 온게 아닐까 하고 나 자신에 대한 
기억의 뗏장을 이제사 들추는 바이다.


출석이 아닌 출근 시작.

1993년 봄. 대학은 일찌감치 포기한 상태에서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고1때부터 생각했던 만화가가
되기 위해 모 만화가의 집을 왔다갔다 하며 (내가 살던 집은 거여동이었고 그의 집은 부평이었는데 참 그
먼 거리를 잘도 왔다갔다했다)
배경 그림 등을 그려주고 있었는데 그 만화가가 아르바이트를 예전에
뛰었기도 했었고 나 자신도 중학교때부터 게임음악 CD를 꽤 구매한 단골이었던 "컴퓨터하우스 만트라
(강남 고속터미널 지점.본점은 용산에 있었음)" 라는 곳에서 그곳 실장님인가 하는 분이 우리가 게임개발
할건데 나에게 게임 그래픽을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한것이 계기였다.

터미널 지하 레스토랑에서 나에게 카레 돈까스를 사주면서.

(부모님 말고 다른 어른이 이런 저녁 사준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음. 지금도 엄청나게 어색했던 당시 심정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당시 만트라가 있었던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전경. 이곳 7층 의류도매상가 내에 있는 컴퓨터
전문 판매점 밀집지역에 있었다.고속버스터미널 사진 중 당시 건물 색깔 사진은 이것밖에 찾질 못했다..

부모님께선 선뜻 허락을 해주셨지만 조건을 달으셨다. 재수 생활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야말로 팔자에도 없던(?)주경야독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해뜰때는 개발자, 해지고나선 입시학원을
전전하는 근로청소년(...)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학원비에 용돈 벌며 살았던 나 자신이 참으로
뿌듯하긴 했지만, 당시 정말 눈물나게 힘들고 피곤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도 했다.
당시 수능이 시작된 해였는데 1년에 여름,겨울 두번에 걸쳐 수능을 볼수있는 시스템이었기에 미대쪽으로
가려고 했던 나에게는 절호의 찬스였다. 수능은 여름에만 보는 쪽으로 학원다니고 그 이후에는 미술학원을
다니는 방향으로 입시준비가 가능했기에 말이다.

그렇게 하드코어한 사회인 겸 정직원 개발자의 첫발을 내딛었을때 내 나이는 불과 19세.
그리하여 개발자 중에서도 가장 막내였기에 개발 말고도 사환마냥 각종 잔심부름까지 도맡아야 했던것이다.
요즘 게임업계는 막내사원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긴 하지만은..

참고로, 당시 월급을 계좌입금이 아닌 봉투로 주었는데 게임회사 다니면서 월급을 봉투로 받아본 개발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정말 첫 월급을 봉투로 받은 소년의 기분이란건 세상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YS 시리즈를 해본 사람 손- (...조용)


▲1994년, 전자랜드 웨딩홀에서 개발자 포함 만트라 관련분들과 회식할때 촬영.
지금이나 그때나 사진을 발로 찍는 실력은 용서를..;;

당시 만트라는 회식을 꽤 자주 하는 편이었는데 고딩 다닐때까지만 해도 술을 몰랐던 내가 입사를 하고
난 뒤 첫 회식에서 맥주를 몇천CC나 마시고(양도 기억안난다..)뻗어버렸음..
막내사원이 되다보니 이사람 저사람 술이 거의 강제로 안 돌수가 없었는데 지금 게임업계에서 이런식으로
신입 개발자에게 술 강요하다간 뭔 일 나겠지?
가끔은 개발자들이 개발실 내에서 퇴근시간 무렵 맥주를 잔뜩.. 사와서 자체 회식을 하기도 했다.

개발자들이 어떻게어떻게 영입되고 모여보니까 이건 처음부터 뭔가 좀 삐걱..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니 사람들이 좋고나쁘고를 얘기하자는게 아니고,스탭 중에서 YS를 제대로 해본 사람은 두세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바로 이스 2 스페셜의 내용이라든지 기획이 이리저리 꼬여버린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스 자체의 본 내용에 훼손되는 기획이 나온다 하더라도 이것을 제지할만한
의견이 거의 나오질 못했기에 말이다. 게다가 그 기획이라든지 내용 수준이 "정말 아니올시다" 인 수준이라면..?


▲단군의 탑 이벤트의 동영상. 출처는
우노의 블로그

당시 필자는 저 생뚱맞은 단군의 탑 제작을 반대했었지만... 일개 막내 사원이 계란을 던진다 한들..
그 지옥같은 탑에 오르신 분들도 그렇지만 나자신도 그당시 이를 갈면서 찍었다.
게다가 방대한 각종 맵,동굴들 화면을 캡쳐해서 프린트해서는 벽에 붙이는 식으로 정리를 하는 작업 도중
나는 40도가 오르내리는 심한 열병을 앓고 있었는데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로 정신없이 앓았다.
할머님께서 호랑이 뼈가루 연고를 머리에 바르는 처방을 해주셨기에 열이 내려 지금 이렇게 포스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비슷한 것으로 개발실도 있었는데 지금와서 얘기하지만 개발자 반쯤은 재밌겠다와 반쯤은 뭐하러 만드냐는
의견이 다분했다.유저분들 평가도 결국 후자로 기울었지만.

개인적으로도 몇번 본적 정도만 있었을뿐 이게 어떤 시나리오인지까지 자세히까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이거 이래도 우리가 YS라는 이름을 달은 게임 만들수 있는 걸까 하고 서로 얼굴을 쳐다볼 수 밖에 없었지만
모두가 젊어서 그랬는지(젊긴 뭘..아예 어렸지..)자신감 하나는 정말 철철 넘쳐 흘렀었다.

아닌게 아니라 대부분 하이텔이라든지 내외에 유명하다는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그랬을지도.
게다가 알게모르게 정식으로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라는, 일종의 야인스러운 자부심이 밑에 깔려 있었기에
그랬던 것도 같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내 경우에는 당시 DOS도 전혀 몰랐으니 이걸 어쩐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있어왔던 맨땅에 헤딩..이라는 대한민국 개발자의 특수스킬을 그때부터 체험하기
시작,이리저리 묻고다니고 여러 시행착오 거치고 벼라별 고생을 하면서.휴.
(당시 저에게 도스라든지 여러가지를 많이 가르쳐주신 에스터리스 류지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DOS도 그럴진데 그래픽 제작 툴이었던 DP2 (Deluxe Paint2 enhanced)는 어느 바다에서 줏어온 물건인지
당시 알 턱이나 있었겠나..?



사진 출처는 위키피디아. 당시 유행했던 그래픽소프트 딜럭스 페인트Deluxe Paint
(사진은 4.당시에는 2를 썼음).
그당시 게임그래픽은 대부분 이것으로 도트노가다를 해댄다는 얘기였을 정도로 게임개발의 대명사급
그래픽 유틸이었다. 원래는 EA에서 개발한 코모도어Commodore의 아미가Amiga 컴퓨터 전용
그래픽소프트였는데 이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IBM호환기종으로도 컨버전이 되었다.
DP는 그로부터 포토샵 4가 활성화된 2000년까지 약발이 먹힌 국내 도트노가다그래픽 유틸로서 자리잡게 된다.
그 중간에 .tga 저장이 가능했던 얼더스 포토스타일러스 aldus photostyler를 쓰기도 했다.



▲도트노가다를 할때 필수품이었던 에이스캣 타블렛. (그때 당시에는 2를 사용했고 사진은 3.)
나중에 익숙해졌을땐 개발실에선 딱딱딱 딱딱딱딱 소리 요란하게도 찍어댔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보다는 이미 컴퓨터에 기본적으로 익숙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특히 음악 파트
경우에는 그야말로 "빛이 났다".

이미 그 당시부터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스튜디오 TeMP의 스탭 분들은 비록 YS시리즈를 잘 몰랐었고
게임음악을 본격적으로는 처음 경험해본다고 했지만 그들의 음악이 없었다면 이스2 스페셜은 반쪽짜리로
잘려 슬픈 게임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TeMP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광야에서 바람같이 나타난 "제다이 나이트"였다.
게임음악 자체를 처음 접했기에 초반엔 좀 당황하기도 했다지만 팰콤 관련 게임음악 CD들을 직접 구입해
가면서 여러 곡을 만들었는데 이 중 원작에도 없는 몇몇 오리지널 곡들은 지금 들어봐도 정말 대단하다.



▲현재는 제법 레어아이템이 되어버린..
당시 게임전문잡지 "게임월드" 창간 4주년기념 게임음악CD부록.



▲CD 안의 설명서에 수록된 Studio TeMP 의 소견록.


▲TeMP의 오리지널 곡 중 하나인 Untitled Wings.
(저작권은 스튜디오 TeMP에 있습니다.ⓒcopyright 1994 All rights reserved by studio TeMP)
중간중간 필드를 지나갈 때 마다 나오는 음악인데 이 곡은 당시에도 그냥 필드 지나치기가
음악때문에 정말 아까웠다는 평이 있었을 정도였다.
(play 버튼이 안보이시면 F5키를 눌러주세요)

다 좋았는데, 문제는 음악을 작곡할 장소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후일 남산 드라마센터에
개발실 이전을 할땐 스튜디오가 따로 생겼다)

그래서 개발실 안에 보통은 헤드셋을 끼면서 음악을 만들수 밖에 없었는데 이 개발실이라는
곳이 강남 고속터미널 7층 의류도매상가 내부에 컴퓨터 전문판매소가 같이 밀집해있는 곳이었으니,




▲출처:http://blog.naver.com/sambo4949?Redirect=Log&logNo=20072185143
...대략 이런 분위기 되시겠다.동대문 같은곳의 의류도매상가 좀 가보신 분들은 이해가 되시리라.

옷가게가 빽빽하게 밀집되어있고 창문이 없기 때문에 낮에도 백열등이나 형광등을
켜야만 했던 데다가 평일에는 손님도 별로 없었기에 정적에 휩싸인 그런 장소였다.
게다가 당시 개발실은 의류 판매점과 맞닿아있던 곳이었는데 소리가 그대로 빠져나가는
"창고"였었다.가끔 음악을 만들다가 헤드셋을 벗고 스피커로 그대로 들려줘 팀원들에게 감상평을
받기도 하였는데 아 근데 어느날 이 의류판매하던 상인들 몇몇이 개발실 앞에 쳐들어와 집단
항의를 한 적이 있었으니..!

이유인 즉슨,


저작권은 FALCOM에 있습니다.
"Perfect collection YS2-Special Arrange Version - Cavern of Rasteenie"
ⓒcopyright 1990 All rights reserved by FALCOM/KING RECORD

라스티니의 폐광 음악인데 들어보면 알겠지만 고요하고 적막한 상가 내부에 이런 음악이 들려오니
무슨 귀신 나올것 같다고 집단으로 들고 일어나 당장 끄라는 강력 항의를 했던 것이다(...)
어느날 어떤 상인은 게임음악을 못참겠던지 매우 격하게 나온적도 있었는데 그때 분위기 쫌 험악했다;
오죽하면 키보드 날아갈뻔 하고..(...) 지금 생각만 해도 으이그 속 타!



이스2 천공의 스페셜 (...)

이스2 스폐셜의 그래픽을 논할 때 고맙게도 퀄리티에 대한 질적인 지적을 낮게 하는 유저분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듯 하다.
헌데 비주얼 씬 부분에 대해서 좀 잘못된 소문이 지금도 퍼져있는데 당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만화가
이명진이 직접 비주얼 씬을 그렸다는 부분
이다.
(위키백과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는데 누가 좀 수정해서 올려주시기 바란다)



▲발매 전 잡지에 실린 광고.
당시 PC통신에서는 칼든 남궁건이라든지 남궁아돌이라는 지적이 다분했음(...)

이런 일러스트와 게임 내 일부 그래픽만을 좀 손댔을뿐 이명진은 비주얼 씬에 대해선
관계가 없었다.대학교 다니면서 만화 연재 하는것도 미치도록 바쁠 지경이었는데 게임 그래픽까지
손 댈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말이다.
물론 이명진은 데뷰 전부터 만트라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개발자들과도 꽤나 친분이
있었기에 만트라와 밀접한 관련은 있었지만(그의 대표작인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이라는 만화에 나오는 손서호라는 인물도 메인 프로그래머 이름에서 따왔다)
한마디로 비주얼 씬 일러스트를 담당한 직원과 그림체가 비슷했었기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그때부터 아예 전설이라 불렀던 리리아의 첫등장 연출.

이스2 스폐셜 그래픽을 논할 때 가장 많이 들려왔던 것이, 당시 꽤나 유행했던 OVA인
"이스2 천공의 신전" 과 너무 흡사하다. 라는 부분인데 여기에서 모작이니 뭐니 하는 얘기가 되려
고맙게 느껴지는 이유인즉슨..

아예 팰콤 측에서 자료를 넘겨주면서 이걸로 참조해 만들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 자료가 뭔고하니, 바로 그 이스2 천공의 신전 OVA의 원판 VHS비디오테이프 패키지라든지
한술 더떠서 그비싼 LD까지 제공을 해주었던 것이다. 게다가 음악팀에는 팰콤 내부 기밀이었던
원본 악보까지...!
이쯤되면 뭐 일부 비주얼 장면에서 모작이니 뭐니 얘기마저 쏙 들어갈 처지다.(...)
오죽하면, 개발 도중 그래픽 아르바이트 생을 뽑을때 만트라에 지원자들이 십수명 지원해 와서는
(실장님이었나) 브리핑을 하는데 먼저 지원자들에게 한 질문이

"..여러분 이스2 천공의 신전OVA 다 보셨겠죠?"

에휴.
사실, 그러한 자료들을 제공(?)받기 전에는 정작 이스2OVA보단 로도스 도전기를 더 많이 봤지만..




▲1994년도 이스2스페셜 발매 직전 즈음에 KOEX에 개최되었던 모 컴퓨터 박람회(였나?하여튼
그런 전시회였음)에 만트라 부스에서 멀티비전으로 시연된 게임 실제 영상이라든지 OVA이스2
천공의 신전 편집 장면을 열심히 보고있는 관람자들..의 모습. 밑에 사진은 당시 브로마이드를
배포하는 장면.
부스 사진들도 꽤 찍었는데 대부분 소실되어버려 매우 안타깝다.



▲같은 행사장 내 전시되어 있었던 파더월드 시연부스.

■ 막내 사원이라 다행(?)

1994년, 만트라 개발실은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이 아닌 남산 KBS드라마센터(현재 남산 예술센터
별관)
로 이전을 하게 되었는데 기억이 나는 분들도 계시리라. 1994년 그해 얼마나 발광할 정도로
무더웠는지..어스토니시아 스토리가 출시되었던 그당시,개인적으로도 그당시 날씨는 정말 최전방에서
겪은 군부대 날씨를 능가할 찜통이었다.

때문에 개발실에는 에어컨을 그야말로 한계치까지 가동시켜놓고 있었는데 나는 막내사원 이었던고로
혼자 밖으로 나가서 벼라별 심부름도 해야 했다 (당시 난 대학에 다니면서 시간표를  하루 비우는쪽으로 짰는데
왜냐면 아직 이스2 스폐셜 개발이 끝나지 않았기에 그날 하루 등교날을 비우고 개발실에 출근을 했었기
때문이다)
. 세운상가에 가서 뭔 부품 사오라는 것부터 근처 숭의여대 앞 매점에서 판매한 구운떡 사오라는
심부름까지-_- 젠장 더워 미치는줄..

...그런데, 그러던 어느날 팀원들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집단 구토,발열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발매 앞두고 개발실 내 전염병이라니, 이는 대단히 중대한 문제였다.
식중독인가 싶어서 처음에는 점심 단골 식당을 의심했는데 장소를 바꿔도 별로 차도가 없자 그다음에는
생수마저 의심을 하였다.어느 사원이 판매원과 전화로 한참 싸운 다음(...)에 주문처를 바꿨지만 그래도
마찬가지였으니. 이때...개발자들이 나를 의심스럽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왜 저녀석 혼자 멀쩡해??!!"

그렇다.남들이 골골댈때 난 아무렇지도 않게 팔팔했던 것이다..
이쯤 되어서야 집단 전염병이 아닌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
.
.
.
.
.....냉방병


▲당시_부려먹었던_개발자들_쌤통_이다.jpg
정말 그때 나혼자 얼마나 배를 잡고 웃었는지 크흐흐;;

이정도는 뭐 해프닝이라 칠만하다.
개발자들이 외부와 단절된 개발실에 틀어박혔을때 당시 심각했던 일이 터졌다.

1994년 7월 9일,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했다.
길거리에선 각 신문사의 호외가 있는대로 뿌려지고 있었고 각 방송사에서는 속보를 연이어 보도하고
있었기에 시민들은 꽤나 우왕좌왕 혼란스러웠는데 그 때 개발실 안에서 김일성 사망을 알고있던
개발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내가 밖으로 심부름을 나왔다가 그냥 호외를 한뭉치 가득 집어서 개발자들에게
뿌리기 전까진.



지금같이 개발자 PC에는 인터넷이 잘도 뚫려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핸드폰이라든지 각종 방법으로
외부의 정보를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세상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렇게 개발실은 외부와
너무나도 단절된 공간이라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던 것이다. 만약 정말 국가비상사태, 아니 건물에 불이라도
났다 치면..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뭐 사람들이 너무 틀어박혀 있었기에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하면 할말이 없지만서도.



■ 오오 안경 리리아 우왕

당시 게임잡지 중 하나였던 게임챔프라는 잡지의 기사가 기억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실제로
이스 2 스페셜은 TV광고를 내려고 했었다.
어느날 방송국 시간대와 해당 시간대의 가격표가 팀원들에게 돌려졌고 여론을 수렴하기도 했었으며
실제 모델을 기용하여 야외 로케를 하기도 했었는데 (사실 누군지는 못봤다)
어느 누구나 리리아 역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것은 자명지사.

근데..
"..어 야외 촬영 한번 시도해봤는데 그럭저럭 나오긴 했는데..근데 그 리리아 역할 한 아가씨가 눈이 꽤
안좋아서 안경을 끼고있더라고."

안경 리리아

안경 리리아

안경 리리아

안경 리리아



쓸만한데? (...)

결국 TV광고 시도는 불발되었지만 뭐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는거.



■ 발매일 연기.연기.또 연기...

이 게임에 대해 그당시 누구나 열과 악이 받친 것 중 하나가 버그.그리고 발매연기였을거다.
사실 게임개발을 해본것은 다들 처음이었기에 개발 기간에 대한 각종 변수를 알 턱이 없었던 것치고는
너무 그 화근이 컸다. 개발에 따르는 각종 악재는 그야말로 숲속의 복병이라고 표현하면 어울릴까나.
뭐 현재 어떤 게임개발이라도 그러한 요소는 따라주고있긴야 하지만... 원래 예정대로라면 1993년 11월
즈음엔 세상에 나왔어야 하는 게임이었다.
개발 초기, 좀 황당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는데 누군가의 주도로(누군지는 밝히지는 않겠음) 국내 최초의
게임회사 노조가 만들어질 뻔한 적이 있었다. 전 개발자들이 전부 만트라 관련 실장이라든지 회장님에게
개발자들의 노조 결성을 건의하러 몰려갔었는데 ..
(나는 당시 그러한 결성에 반대 의사를 밝혔기에 혼자 개발실에 남겨져 있었다.)


▲개발 중기(?)즈음에 게임월드에 게제된 기사.개발 리포트는 따로 10여 페이지에 걸쳐 소개되었음.
개발실에서 도트질에 피곤이 역력한 본인 얼굴도 찍혔다(...)
사진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장소는 만트라 매장이었고 개발실은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당장 개발실에까지 들려올 정도의 엄청난 고함이 터져나왔다.
당시 회장님은 실장님 아버지 되시는 분이었는데 이분이 정말 무서운 분이었다.
(정확한 경력은 직접 들은 내용 중엔 여기 적기에는 위험한 얘기가 꽤 있어서 올리지는 못하겠고)정말 나이드신
분답지않게 몸이 무진장 단단해 보이는 분이었던데다가 주먹의 정권이 무술가처럼 야무지게 단련되어 있었다..
그 주먹으로 회의실의 두툼한 나무 테이블을 쾅쾅쾅쾅 치고 있었다..


▲1994년 남산 드라마센터 내에 차려진 개발실을 촬영하고계신 당시 회장님.
얼굴 드러나지 않은 사진은 이게 유일해서.. 당시 어떤 이유로 개발실 촬영을 하신건지는 불명.
...정말이지 개발실 내부 사진 찍어놓은 것들이 대부분 소실되어 매우 안타깝다.


으아
그때 난 정말 무서워 미칠것 같았다. 이윽고 나마저 회의실로 호출이 되어 쫄아서 들어갔고,
그때부터 직원들을 달래는 말투로 얘길 하셨는데...그리하게 되어 노조 결성은 물 건너갔고 이를 주도한
한 직원은 그냥 그즉시로 해고를 당하게 된다.최초로 게임회사 내의 정치를 경험한것 치고는 임팩트가 꽤
있었는데 뭐 이것도 나름 게임업계의 전설이 된다면 될려나?

이런 상황에 발매연기에 대한 압박은 기다리는 유저분만큼 회장님도 무진장 무서울 지경이었고 결국 최후에
최후의 데드라인을 거치며 결국 출시를 했을땐 "빨리 내고 보자"라는 강박관념이 없을수가 없었기에 어느 정도의
버그를 암묵적으로 허용해 버리는 비극을 낳게 된 것이라 하겠다.. 물론 구차한 변명이라 욕하는 분이 계셔도
정말이지 할말이 없다.


▲당시 정품 디스켓들. 이미지 출처는 cailia님의 이글루스쩜컴입니다

게임을 빨리 내기 위해 마스터 본이 나오고(사실 발매일 임박할때까지 살몬의 신전 버그를 못잡아서 나가는
길을 막아버리고 시치미뗀 상태로 내버린 바로 그것 되겠다..)
복제를 막기 위해 디스켓에 카피락을 거는
작업을 밤새 할때라든지(디스켓 한장 한장을 넣었다 뺐다 이작업을 하는데 그 반복작업에 아주 사람 돌아가시는줄
알았다. 게다가 이 게임이 디스켓 장수가 좀 많나?)
그것들을 패키징하는 공장에 가져가서 맥주 한캔으로
날밤을 새워가며 패키지에 종이를 끼워넣고 매뉴얼과 디스켓을 하나하나씩 넣고 테이프를 붙이는 작업까지
해가며 정말 패키지 게임의 최종 출시 작업까지 개발자들이 전부 나서서 했지만은..그것이 발매 연기에 대한
해명치고는 너무 구차한 것이겠지.휴우...


▲1993년 게임월드라는 잡지에 실린 이스2스페셜 특집기사 중 발췌.사진은 당시 사용하고있던 자체 개발 맵 에디터.
보다시피 처음부터 방대한 맵으로 유저들을 초반부터 압도하자는 기획 의도를 알 수 있다.
또한 게임 내의 경험치라든지 금액 액수 등의 숫자 단위가 매우 큰 것도 그러한 목적이었다.
때문에...이러한 요소들은 개발 일정을 늘여버리는데 한몫(?)단단히 하고야 만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이스 2 스페셜은 드디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밤새 패키징 작업하느라 몸이 삶은 파가 되어 나왔을때 "해냈다"라는 성취감의 기쁨보단 뭔가 가슴이 뚫려 텅 빈
느낌
이 강하게 들었고...
...이후 그것은 중독성이 강한 감정이 되어 계속 패키지 게임을 만들어오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 끝나지 않은 개발자 엘리지.


▲ 1994년 촬영한 사진이다. 플레이어 캐릭터(아돌)가 자동으로 특정 NPC에 다가가서 대화를 하는
자동 스크립트를 완성했을때 사진인데 그것이 완벽하게 구현되던 늦은 밤, 개발자들은 모두 탄성을 질렀다.

맻음글을 타이핑하려니 오기와 만용으로 포스팅 내용을 적으면서 겨우 떠올린 기억들이 다시 떠올려진다.
만트라 라는 게임회사는 10년전 모 대기업의 강제부도(?)라는 이상한 소문을 남긴채 대한민국 게임사 속에
사라졌고, 당시 개발자들은 지금도 고참(혹은 원로?) 개발자로서 의욕을 부리고 있는 이 때 잠시 뒤를
이렇게 돌아본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 포스팅에게서 질문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본가쪽에 있는 사진첩들을 있는대로 다 뒤집어 엎으며 사진을 찾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완전 수동 카메라-그것도 베트남전 참전하셨을때 미군 PX에서 구입하신 골동품-는 당시 내 분신과도 같았다),

여러 웹페이지를 바람난 서방 찾으러 온동네 해매는 아낙의 심정으로 거의 발광난듯이 돌아다니며 자료들을
수집하면서 어떻게 이 염주를 잘 꿸까 하는 생각에 자면서도 이스2 스페셜 화면이 날아다니기도 했다.

의욕있게 시작할때는 책한권 쓰는거 아냐? 라며 어줍쟎게 재보기도 하였지만 첨삭이 가해지면서 대충
그나마 길다 싶은 포스팅 하나 분량은 겨우 되었다.

정작 내용이 들어가면서, 그당시 기대+실망+분노(...) 에 찼던 유저 분들의 심정에 반하여,당시 개발자들의
변명과 미화가 되려 불난집에 키질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 또한 생기게 되었지만, 공식적인 역사가 아닌
개발자 한명의 야사野史 수준인데..라는 극히 주관적인 자위로 포스팅을 거의 끝마치게 될 수 있었다.
이 포스트모템이, 지금은 국내 최대의 문화수출 상품이면서 수출 역군으로 든든하게 자리매김을 했다고 자부해주는
언론들이 그 당시 전자오락을 "전자독버섯"이라고 폄하할 때 기인, 야인과도 같았던 개임개발의 이면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는 창문이 되었다면 나로서는 성공한 포스팅이라고 나름 자축해 보겠다.
 



▲ 1996년에 촬영한 것으로 기억한다. 캠퍼스 러브 스토리가 한참 개발 중이었던 남일 소프트 개발실이(당시
양재동 SKC 개발전용 건물)이전을 할때 고사를 지내는 장면이다.



by winbee | 2009/10/11 18:05 | 어때요 | 트랙백(5) | 핑백(6) | 덧글(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