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예전에, 세종대학교 게임스쿨에 그래픽 강의를 꽤 나간 적이 있었다. 자기경력을 어느정도 소개하고 강의를 하던 도중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는데 강의실 밖 복도에서 담배를 한대 물고 불을 붙이려니(당시 헤비스모커였음..) 어느 학생이 내 곁으로 다가와서는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그 이스2 스페셜에서요..살몬의 신전은 도저히 통과를 못하겠던데 어떻게 해야 나올 수 있는 거였나요?"
이때, 나는 담배를 떨구었고 쥐구멍을 찾았다. (...)
▲당시 각종 게임잡지에 발매전 실린 광고. 물론 게임이 2월 15일 나오진 않았음..
이스2 스페셜. 지금도 숱한 게이머들의 단골 입담 재료로서 오르내리고 있는 그 희대의 풍운작. (필자는 그렇게 평하고싶다.물론 뻔뻔한 평가다) 대한민국 게임개발의 분수령이라 일컬어지는 동시에 게임개발 기술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는 평가와 최악의 버그,끝없는 노가다, 기준없는 편작,의미없이 이리저리 꼬아버린 내용 등등..이라는 졸작에 붙일만한 이름이란 이름은 다 붙일 수 있는 악평이 따라다니는... 대한민국 게임사에 애증으로 지금까지 구전되어 오고있는 이스 2 스페셜.
필자는... 불과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이 게임은 완전히 세상에 묻혀버린 물건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프닝 동영상. 출처는 우노의 블로그 (참고로 우노님은 2006년 4월 13일 사망하셨습니다.뒤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데, UCC붐을 타면서 이 물건에 대한 포스팅이 솔솔 올라왔고 게다가 이 게임의 오프닝영상까지 인터넷을 떠돌게 됨에 따라 아직까지도 이 게임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속속 나타나게 되었고 그 때의 추억(?)을 잊지 못하신 어느 분께선 아예 도스부팅까지 시전하는 포스팅을 올려주시기도 하였다. 그것들을 둘러보니, 정작 개발자였던 내가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당시 이 게임에 얼마나 많은 유저분들이 격분했고 (...)그와 동시에 깊은 애환(??)으로 남아 계신지 그 깊이를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포스팅들 중에 당시 떠돌았던 여러 유언비어,의혹,진실들이 다시 무덤에서 기어나와 스릴러를 추고 있기에 이제 정리를 좀 해야 할 때가 온게 아닐까 하고 나 자신에 대한 기억의 뗏장을 이제사 들추는 바이다.
■ 출석이 아닌 출근 시작.
1993년 봄. 대학은 일찌감치 포기한 상태에서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고1때부터 생각했던 만화가가 되기 위해 모 만화가의 집을 왔다갔다 하며 (내가 살던 집은 거여동이었고 그의 집은 부평이었는데 참 그 먼 거리를 잘도 왔다갔다했다) 배경 그림 등을 그려주고 있었는데 그 만화가가 아르바이트를 예전에 뛰었기도 했었고 나 자신도 중학교때부터 게임음악 CD를 꽤 구매한 단골이었던 "컴퓨터하우스 만트라 (강남 고속터미널 지점.본점은 용산에 있었음)" 라는 곳에서 그곳 실장님인가 하는 분이 우리가 게임개발을 할건데 나에게 게임 그래픽을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한것이 계기였다.
터미널 지하 레스토랑에서 나에게 카레 돈까스를 사주면서.
(부모님 말고 다른 어른이 이런 저녁 사준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음. 지금도 엄청나게 어색했던 당시 심정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당시 만트라가 있었던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전경. 이곳 7층 의류도매상가 내에 있는 컴퓨터 전문 판매점 밀집지역에 있었다.고속버스터미널 사진 중 당시 건물 색깔 사진은 이것밖에 찾질 못했다..
부모님께선 선뜻 허락을 해주셨지만 조건을 달으셨다. 재수 생활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야말로 팔자에도 없던(?)주경야독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해뜰때는 개발자, 해지고나선 입시학원을 전전하는 근로청소년(...)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학원비에 용돈 벌며 살았던 나 자신이 참으로 뿌듯하긴 했지만, 당시 정말 눈물나게 힘들고 피곤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도 했다. 당시 수능이 시작된 해였는데 1년에 여름,겨울 두번에 걸쳐 수능을 볼수있는 시스템이었기에 미대쪽으로 가려고 했던 나에게는 절호의 찬스였다. 수능은 여름에만 보는 쪽으로 학원다니고 그 이후에는 미술학원을 다니는 방향으로 입시준비가 가능했기에 말이다.
그렇게 하드코어한 사회인 겸 정직원 개발자의 첫발을 내딛었을때 내 나이는 불과 19세. 그리하여 개발자 중에서도 가장 막내였기에 개발 말고도 사환마냥 각종 잔심부름까지 도맡아야 했던것이다. 요즘 게임업계는 막내사원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긴 하지만은..
참고로, 당시 월급을 계좌입금이 아닌 봉투로 주었는데 게임회사 다니면서 월급을 봉투로 받아본 개발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정말 첫 월급을 봉투로 받은 소년의 기분이란건 세상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 YS 시리즈를 해본 사람 손- (...조용)
▲1994년, 전자랜드 웨딩홀에서 개발자 포함 만트라 관련분들과 회식할때 촬영. 지금이나 그때나 사진을 발로 찍는 실력은 용서를..;;
당시 만트라는 회식을 꽤 자주 하는 편이었는데 고딩 다닐때까지만 해도 술을 몰랐던 내가 입사를 하고 난 뒤 첫 회식에서 맥주를 몇천CC나 마시고(양도 기억안난다..)뻗어버렸음.. 막내사원이 되다보니 이사람 저사람 술이 거의 강제로 안 돌수가 없었는데 지금 게임업계에서 이런식으로 신입 개발자에게 술 강요하다간 뭔 일 나겠지? 가끔은 개발자들이 개발실 내에서 퇴근시간 무렵 맥주를 잔뜩.. 사와서 자체 회식을 하기도 했다.
개발자들이 어떻게어떻게 영입되고 모여보니까 이건 처음부터 뭔가 좀 삐걱..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니 사람들이 좋고나쁘고를 얘기하자는게 아니고,스탭 중에서 YS를 제대로 해본 사람은 두세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바로 이스 2 스페셜의 내용이라든지 기획이 이리저리 꼬여버린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스 자체의 본 내용에 훼손되는 기획이 나온다 하더라도 이것을 제지할만한 의견이 거의 나오질 못했기에 말이다. 게다가 그 기획이라든지 내용 수준이 "정말 아니올시다" 인 수준이라면..?
당시 필자는 저 생뚱맞은 단군의 탑 제작을 반대했었지만... 일개 막내 사원이 계란을 던진다 한들.. 그 지옥같은 탑에 오르신 분들도 그렇지만 나자신도 그당시 이를 갈면서 찍었다. 게다가 방대한 각종 맵,동굴들 화면을 캡쳐해서 프린트해서는 벽에 붙이는 식으로 정리를 하는 작업 도중 나는 40도가 오르내리는 심한 열병을 앓고 있었는데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로 정신없이 앓았다. 할머님께서 호랑이 뼈가루 연고를 머리에 바르는 처방을 해주셨기에 열이 내려 지금 이렇게 포스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비슷한 것으로 개발실도 있었는데 지금와서 얘기하지만 개발자 반쯤은 재밌겠다와 반쯤은 뭐하러 만드냐는 의견이 다분했다.유저분들 평가도 결국 후자로 기울었지만.
개인적으로도 몇번 본적 정도만 있었을뿐 이게 어떤 시나리오인지까지 자세히까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이거 이래도 우리가 YS라는 이름을 달은 게임 만들수 있는 걸까 하고 서로 얼굴을 쳐다볼 수 밖에 없었지만 모두가 젊어서 그랬는지(젊긴 뭘..아예 어렸지..)자신감 하나는 정말 철철 넘쳐 흘렀었다.
아닌게 아니라 대부분 하이텔이라든지 내외에 유명하다는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그랬을지도. 게다가 알게모르게 정식으로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라는, 일종의 야인스러운 자부심이 밑에 깔려 있었기에 그랬던 것도 같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내 경우에는 당시 DOS도 전혀 몰랐으니 이걸 어쩐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있어왔던 맨땅에 헤딩..이라는 대한민국 개발자의 특수스킬을 그때부터 체험하기 시작,이리저리 묻고다니고 여러 시행착오 거치고 벼라별 고생을 하면서.휴. (당시 저에게 도스라든지 여러가지를 많이 가르쳐주신 에스터리스 류지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DOS도 그럴진데 그래픽 제작 툴이었던 DP2(Deluxe Paint2 enhanced)는 어느 바다에서 줏어온 물건인지 당시 알 턱이나 있었겠나..?
▲사진 출처는 위키피디아. 당시 유행했던 그래픽소프트 딜럭스 페인트Deluxe Paint (사진은 4.당시에는 2를 썼음). 그당시 게임그래픽은 대부분 이것으로 도트노가다를 해댄다는 얘기였을 정도로 게임개발의 대명사급 그래픽 유틸이었다. 원래는 EA에서 개발한 코모도어Commodore의 아미가Amiga 컴퓨터 전용 그래픽소프트였는데 이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IBM호환기종으로도 컨버전이 되었다. DP는 그로부터 포토샵 4가 활성화된 2000년까지 약발이 먹힌 국내 도트노가다그래픽 유틸로서 자리잡게 된다. 그 중간에 .tga 저장이 가능했던 얼더스 포토스타일러스 aldus photostyler를 쓰기도 했다.
▲도트노가다를 할때 필수품이었던 에이스캣 타블렛. (그때 당시에는 2를 사용했고 사진은 3.) 나중에 익숙해졌을땐 개발실에선 딱딱딱 딱딱딱딱 소리 요란하게도 찍어댔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보다는 이미 컴퓨터에 기본적으로 익숙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특히 음악 파트 경우에는 그야말로 "빛이 났다".
이미 그 당시부터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스튜디오 TeMP의 스탭 분들은 비록 YS시리즈를 잘 몰랐었고 게임음악을 본격적으로는 처음 경험해본다고 했지만 그들의 음악이 없었다면 이스2 스페셜은 반쪽짜리로 잘려 슬픈 게임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TeMP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광야에서 바람같이 나타난 "제다이 나이트"였다. 게임음악 자체를 처음 접했기에 초반엔 좀 당황하기도 했다지만 팰콤 관련 게임음악 CD들을 직접 구입해 가면서 여러 곡을 만들었는데 이 중 원작에도 없는 몇몇 오리지널 곡들은 지금 들어봐도 정말 대단하다.
▲현재는 제법 레어아이템이 되어버린.. 당시 게임전문잡지 "게임월드" 창간 4주년기념 게임음악CD부록.